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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터치] 고마워, 계란 /김기영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2017.09.03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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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으로 밥상이란 것을 차리기 시작하고부터 계란이라는 식재료에 대해 무한한 애정을 가지게 되었다. 차려진 밥상 앞에 앉아 숟가락을 들면 되던 시절엔 그저 맛난 반찬 중의 하나에 지나지 않던 것이 음식을 하게 된 후로는 달리 보였다. 

계란만한 식재료가 없었다. 양파처럼 눈물을 흘리며 껍질을 까지 않아도 되며 그것 하나로도 훌륭한 요리가 된다. 계란찜, 계란프라이, 계란프라이도 완숙이 있고 반숙이 있다. 나는 반숙을 특히 좋아한다. 아, 잠시 계란을 멀리하고픈 때가 있긴 했다. 중학생이던 둘째가 요리고등학교엘 가겠노라며 조리사 시험을 칠 때였는데 필기시험은 합격을 하고 실기시험 종목이 스크램블드에그였다. 녀석의 원만한 수련을 위해 이틀에 한 번꼴로 계란 한 판씩을 사 날랐고, 불 조절과 손놀림에 따라 미묘한 차이가 나는 각종 스크램블드에그를 인내심을 가지고 먹어야 했던 잠시의 시간들을 제외하면 계란은 언제나 옳았다. 아들은 요리고등학교를 가지 않았다.

기억나는 계란과의 첫 대면은 시골의 할머니집이다. 닭장 안에 요란한 볏을 인 장닭과 몇 마리의 암탉이 있다. 닭이 ‘꼬꼬댁 꼬꼬’하고 운다. ‘저건 닭이 알을 낳았다는 소리다’며 고모가 어린 나에게 설명을 한다. 그리고는 내가 따라 들어오지 못하게 닭장 문을 살짝 발로 밀며 안으로 들어간다. 고모의 뒷모습은 매우 위엄이 있다. 닭장 안을 가로지른 횃대 위에 할아버지가 짚으로 엮은 닭둥우리가 있다. 고모는 장닭을 경계하며 손을 둥우리에 집어넣는다. 한 개, 두 개, 고모가 계란을 꺼낸다. 닭들은 꼬꼬댁거린다. 그러거나 말거나 계란은 고모 손으로 넘어왔다. 그래도 고모는 닭들을 매우 사랑했다. 모이를 뿌려주는 틈틈이 개구리를 잡아서 닭장에 던져주며 맛있게 많이 먹으라는 말도 빼먹지 않았다. 그 계란은 가마솥 계란찜으로 밥상에 올랐는데 가마솥에 밥을 하면서 자작하게 물이 잦아들고 뜸을 들일 때 찌는 것이다. 찰진 가마솥 밥과 약간 짭조름하면서 매끈한 계란찜의 조합은 얼마나 환상적이었던지 나는 시시때때로 닭장 앞을 서성거렸다. 

한 그릇의 계란찜을 나누어 먹다가 계란프라이를 각각 한 개 먹게 되었을 때의 기쁨 또한 대단했다. 영도 동삼동에 살 땐데 집에서 좀 올라가면 양계장이 있었다. 엄마와 함께 계란을 사러 갔는데 할머니집에서 보던 닭장과는 수준이 달랐다. 큰 공간 속 철망에 갇힌 닭이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철망의 앞부분에는 반으로 자른 홈통 모양이 길게 이어져 있고 거기엔 놀랍게도 계란이 줄줄이 있는 것이었다. 몇 번을 같이 간 다음에는 동생들과 심부름을 가게 됐는데 집에 오는 내내 계란을 깨트릴까 봐 숨도 크게 못 쉬고 새색시 걸음으로 오고는 했다. 

극단이 한창 전국 순회공연이 많던 시절,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밥을 사 먹으면 그 돈이 만만찮아서 밥을 준비해서 가는데 그때 제일 만만한 반찬이 계란 장조림이었다. 계란을 두 판정도 삶아서 간장에 조리는데 내일 공연 떠날 때 가져갈 거니 손대지 말라고 경고를 하지만 젊은 단원 몇몇은 간단하게 한잔하자고 벌린 술판에 기어코 계란 장조림을 가져와서 반 넘어 먹어버렸다. 다음 날 극단 살림을 맡아 하는 총무는 쑥 내려가 버린 계란 장조림 통을 확인하고는 눈을 흘기지만 이내 다른 찬거리들을 준비해서 길을 나섰다. 그 무렵 극단을 찾아오는 이들의 손에는 대부분 계란 두세 판이 들려 있었다. 가난한 극단의 일용할 양식이었다.

계란이 빠진 밥상이 허전하다. 푸드 포비아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우리의 밥상은 위험해졌고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값이 뛰거나 혹은 소비가 얼어붙어 생산자가 고통받거나, 이래저래 살기가 힘들어진다. 더 많이 생산하고, 더 많은 마진을 위해 단가를 후려치고, 높은 수익을 위해 몇 달간 저장고에 비축을 하는 그 각각의 과정에 자본의 욕망은 숨어 있다. 

지구상의 가장 많은 개체 수를 자랑하는 닭이 위험에 처하면 인류의 생존도 위협받는다는데 매년 조류인플루엔자로 매몰당하는 닭과 살충제 오염으로 깨져나가는 계란들을 보니 위험 게이지가 수직 상승하는 것 같다. 삶의 대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저렴하며 간편하고 레시피에 따라 근사한 요리로 변신하는 계란, 그동안 고마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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