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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빙칼럼] 탈상품화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2016.04.27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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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아들과 목욕을 다녀왔습니다. 우리 동네 목욕탕은 계단에 예쁜 화분들이 놓여 있습니다. 풍류를 아는 어느 분이 그랬지요, '문 앞 화초가 깔끔한 식당은 언제든 믿어도 된다'. 그 말씀처럼 우리 동네 작은 목욕탕은 아담하고 깔끔하여 가족끼리 물을 즐기기에 적당합니다. 우리 게으른 부자가 목욕을 좋아하는 것은 물을 원래 좋아하는 편이기도 하지만, 더욱 좋은 것은 자유롭게 원하는 것을 하며 아무 생각없이 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원하는 것이라고 봐야 너무 뜨겁거나 차갑지 않는 물에 유유자적 몸을 맡기는 정도일 뿐이지요.

아들은 바가지 두 개로 공기주머니를 만들어 유영을 하고, 저는 여느 아저씨들처럼 탕에서 혼자 중얼거리다가 한증막에서 인내를 경험하기도 합니다. 조금 나른해지면 그제서야 아내와 엄마에게 댈 핑곗거리를 마련하기 위해 간단히 때를 밀고 곧 잊어버릴 저울의 숫자를 확인하며 한숨 짓지요.

목욕탕에서 나와 건너편 가게에서 우유와 음료수를 사들고 멍하니 벤치에 앉아 있었지요. 혼자 있을 때 멍하니 공기를 보고 있으면 좋다, 봄에는 공기가 더 잘 보인다, 지구는 태양을 돌고 태양은 우주를 도니 가만히 있어도 최고의 여행을 하고 있는 것이지 않으냐는 어떤 작가의 이야기를 들었다, 아침에 동네 고양이 무리의 우두머리를 보았다, 한쪽 눈에 상처가 있고 덩치가 큰 그 녀석은 절대 뛰어 다니거나 서두르지 않는다 등등 한담을 나누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갓 걸음을 배운 듯 아장아장 걸어가는 아기에게 작은 표정으로 인사를 주고 받는 시간. 물 같은 시간 속에서 멍하니 떠다니는 것은 숨가쁘게 돌아가는 팍팍한 세상이라는 철로변에 있는 간이역과 같습니다. 이 간이역은 다시 활기를 불어넣어주고, 알 수 없는 미래의 막막함을 이겨낼 쉼을 줄 수 있습니다. 아마도 자유란 쉼과 비슷해야지, 스스로 어찌하지 못할 자유 그 자체는 공포일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 공포를 오랫동안 감내하다 보면 심령은 상하고 육체는 쇠하여 도무지 자기와 타인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뿐더러 심하면 해치기도 합니다.
사회복지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개념 중에 '탈상품화'라는 말이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사람을 상품화시키지 않는다, 사람이 자신의 노동을 내다 팔지 않고서도 인간으로서 기본적 품위를 유지하게 한다는 정도의 뜻입니다.

일자리를 잃어 버리거나 취업이 되지 않아 강제로 부여받은 시간은 여유가 아니라 사회적 감금입니다. 장애를 얻거나 노쇠한 이를 누군가에게 하릴없이 얹혀 지내게 하는 것은 추방이지 배려가 아닙니다.

생의 축복으로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고 생산하였지만, 이때다 싶어 직업적 능력을 거세하고 무망의 시간 속에서 서서히 고립시키는 사회는 축복을 저주로 만드는 낡은 구조입니다. 자신의 의지로 선택한 자유 이외에 강제된 자유 속으로 사람을 내몰거나 억압을 행사하는 사회, 즉 사회적 감금과 추방과 고립을 통해 운영되는 낡은 사회는 그 생명력이 길지 않습니다. 끝 모를 궤도 속에서 이탈하지 않으려 몸부림 칠 수도 없이 격렬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가끔은 봄날 아지랑이를 보며 몽상에 잠겨도 괜찮다고 인정해주는 소박한 사회가 사회복지에서 꿈꾸는 사회입니다.

윤성호 동서대 사회복지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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