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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소박하게 꿈 하나가 움텄는데, 그것은 부산 영도 태종대부터 포르투갈 리스본 해변까지 내 차를 끌고 가는 여행이었다. 고향같은 영도에서 출발하여 개성과 평양을 지나 금강산과 묘향산을 들르고, 백두산을 돌아 신의주를 통해 중국과 러시아와 몽골을 지나 바이칼 호수에서 물 한 모금 마시고 싶다.
고풍스런 중유럽을 거쳐 화려한 서유럽을 돌아보고 대서양이 보이는 포르투갈 리스본 작은 호텔에서 며칠 쉬고 싶다. 자동차가 견뎌낼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그것은 이 소박한 여행의 작은 걸림밖에 되지 않는다. 문제는 몇몇 위정자의 사리사욕으로 도로를 꽉 막아 놓고 대한민국을 반도보다 못한 섬으로 만들어 놓았다는 데 있다.
선거철을 앞 둔 요즘 TV를 켤 때마다, 신문을 펼칠 때마다 전쟁 소식이 들끓고 있다. 말로만 들어도 험악하기 짝이 없는 살상무기들을 동원하고 최대 규모의 전시작전 훈련이니, 주요 시설 집중타격훈련이니 하는 소식을 매시, 매분마다 들려준다. 아이들까지 전쟁을 염려한다. 정전이 아닌 휴전의 나라, 그속의 위기감만을 긴장감 있게 전달하고 있다. 당사자 양측을 비롯하여 맹방이니 우방이니 하는 주변 국가들까지 회계장부를 꺼내들고 전쟁사업에 대한 손익분기점을 점치고 있는 모습이다. 점점 전쟁국가가 되어가고 있는 불온한 봄날, 아침마다 나의 소박한 꿈이 멀어지는 것을 느낀다.사회복지에서 지향하는 국가의 모습은 복지국가이다. 복지국가(Welfare state)라는 용어는 나치라는 전쟁국가(Warfare state)를 비판하고 극복하기 위해, 영국 성공회의 윌리엄 템플 캔터베리 주교가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류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감성과 영혼을 피폐하게 했던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모색해온 대안이 복지국가이다. 전쟁을 국가의 주요 사무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과 인간의 공생과 안녕, 행복과 번영을 위해, 복지·고용·의료·교육 사무를 국가의 핵심 사무로 올려놓은 국가를 복지국가라고 한다.
나와 내 가족이 장애를 입고, 병에 걸리고, 늙어 가고, 실직을 하고, 저 멀리 다른 나라에서 왔더라도 우리 사회가 나와 내 가족을 인간으로 이해하고 받아 줄 것이며, 그 속에서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주는 사회가 복지국가의 꿈이다. 복지국가는 이데올로기의 양 극단에서 많은 비판을 받아왔고, 인간 사회를 운영하는 궁극은 아니지만, 그 효용성은 아직 유효하다.
위기를 조장하여 불안과 공포로 인간을 감시·통제하는 사회를 만드는 국가는 필히 끝이 좋지 않다는 것을 역사가 증명한다. 전쟁의 위기와 긴장을 통해 사회를 유지하는 국가전략은 관리자의 입장에서는 한 순간 달콤하지만, 신뢰라는 사회의 자본을 갉아먹게 되어 그 리더십을 오래 지속할 수 없다. 거의 모든 복지국가는 평온하고 넉넉할 때 만들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국가적 위기를 맞았을 때, 민주주의의 토양 속에서 탄생했다는 점을 주시해야 한다.
윤성호 동서대 사회복지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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