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사람과 사람 사이가 이렇게 촘촘히 연결된 사회는 일찍이 없었다. 정보통신기술의 발전 덕택에 하루 24시간 관계 속에 꽁꽁 묶여 있다. 수많은 정보는 우리 곁을 떠돌아다니고 음미하기도 전에 휘발되어 사라져버린다. 텅 비어 있는 마음을 달래려 소소한 자극을 찾아 헤매고 자신의 이미지를 끊임없이 세상 밖으로 보내어 관심을 호출한다. 모두가 연예인이 된 듯 타자의 관심을 먹고 산다.
살아가면서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은 몇 명이며 그 이유가 되는 사건은 무엇이냐고 학생들에게 묻곤 한다. 가장 중요한 사람과 그 수는 곧잘 말하는 편이지만 사건에 대한 기억을 풍부하게 말하는 이는 드물다. 그런 기억을 풍부하게 말하는 사람일수록 자신의 삶에 대한 만족감이 크다. 즉 자신에게 중요한 의미를 던져준 타자, 살아 있는 그와의 추억이 사람을 살아 버티게 하고, 또 다른 이에게 의미와 의지를 북돋을 수 있다. 이런 타자를 '의미있는 타자'라고 한다. 의미있는 타자의 수나 추억의 양은 중요하지 않다. 그 의미의 깊이와 활력이 중요하다.
의미있는 타자를 만나거나 되는 것은 개별화로부터 시작한다. 개별화란 상대를 비교하거나 싸잡지 않고 각자 고유한 존재로 받아들인다는 의미다. 일곱 살 아이의 고민과 일흔 살 어른의 고통을 비교해 경중을 따지지 않는다는 의미다.바야흐로 지금은 시기와 갈등의 시대다. 정쟁에 휩싸인 정치는 끊임없이 남북갈등과 남남갈등을 유도하고 파국에 이르기까지 치킨게임을 하고 있다. 부유한 아파트촌에 사는 사람들은 대문을 걸어 잠그고 옆 동네 아이들의 통학로를 막아버린다. 장애인에 대한 복지를 확충하라고 하지만, 정작 자신의 아이와는 함께 학교를 다니게 하지 않는다. 아무런 희망 없이 길에서 노숙하는 이들의 착함과 착하지 않음을 맹렬히 분석하여 옥석을 가르면서 천 원 한 장 꺼내는 것은 인색하다.
아마도 '의미있는 타자'를 만나보지 못한 사람들이 타자의 의미를 깡그리 무시하고, 그것을 당연한 것처럼 여기게 만드는 사회 탓일 터이다. 입춘이 지나고 곧 대동강이 풀린다는 우수다. 눈 속에서 피는 매화에 경탄하듯, '의미있는 타자'를 피워내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윤성호 동서대학교 사회복지학부 교수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창간기획] 낙동강 하구 0.9℃의 경고](design/m_littletern2025.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