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메가박스 부산극장에서 열린 사이언스 토크 in 시네마에서 관객들이 코멘터리 방식으로 실시간 질문을 스크린 왼쪽 댓글창에 띄우고 있다. 부산과학기술협의회 제공

지난 17일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개막 이후 첫 휴일을 맞았던 21일 중구 남포동 BIFF광장에는 열기가 남달랐다. 스크린 속 영화와 과학 이야기가 ‘실시간 동시상영’되고 광장에는 영화원리 체험활동까지 이어져 관객과 관광객들은 초가을 영화제의 이색 분위기를 즐길 수 있었다는 반응을 보였다.

부산과학기술협의회와 부산시가 공동 운영하는 부산과학문화거점센터는 21일 메가박스 부산극장 제1관에서 ‘사이언스 토크 in 시네마’를 진행했다. 이는 지난 19일부터 시작된 커뮤니티비프의 ‘올데이시네마(특정 주제나 공통점을 지닌 영화를 모아서 온종일 집중탐구하는 기획전)’ 마지막 행사였다.

지난해 BIFF 행사에서 처음 도입된 ‘사이언스 데이’는 관객들이 과학자와 함께 영화 속 과학적 요소를 중심으로 소통하는 이색 상영회다. 이 행사는 한국과학창의재단과 전국 12곳 지역과학문화거점센터에서 주목하고 있는 시그니처 특화 프로그램으로 평가받고 있다.

부산과학문화거점센터는 이번 ‘사이언스 토크 in 시네마’에서 ‘정재승의 시네 사이언스(영화 ‘리미트리스’)’를 비롯해 ‘상상 시네마(영화 ‘타임패러독스’)와 ‘과학 수다(영화 ‘월-E’)’ 등 3개 프로그램을 온종일 진행했다. 국내에서 활동하는 과학 커뮤니케이터 중 출중한 역량을 자랑하는 박상준 서울SF아카이브 대표가 3명의 과학자와 호흡하면서 사이언스 토크를 이어갔다.

부산과학문화거점센터가 21일 메가박스 부산극장 1관에서 진행한 사이언스 토크 in 시네마 첫 번째 게스트로 나선 정재승 교수가 관객들의 사진 찍기와 사인 요청에 응하고 있다. 부산과학기술협의회 제공

이 가운데 ‘정재승의 시네 사이언스’와 ‘과학 수다’는 코멘터리 상영 방식이었다. 송수신기를 착용한 관객들은 영화를 감상하는 도중 스마트폰으로 자유롭게 질문하고, 과학자가 스크린 왼쪽 채팅장에 올라온 내용을 실시간 음성 해설로 답변하는 형태다.

‘상상 시네마’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사이언스 픽션 ‘타임패러독스’의 주요 전환점을 앞두고 상영을 잠시 멈추고 관객이 다음 이야기를 자유롭게 상상하는 토크 시간이 별도로 마련됐다. 이를 통해 과학적 상상력과 추리력을 자극했다. 관객들은 흥미롭게 토크에 참여하면서 각자 시선으로 결말을 예측했다.

물리학자로서 과학과 인문학을 넘나들며 독특한 시선으로 예술세계를 펼쳐보이는 정재승(KAIST 뇌인지학과) 교수는 이날 영화관에서 ‘사이언스 아티스트’의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뇌 기능을 100% 활용할 수 있게 해주는 신약(NZT-48)을 복용한 무명 작가의 인생 역정을 그린 미국 SF 스릴러 영화 ‘리미트리스’를 관람하면서 관객들과 많은 것을 고민했다.

인간의 뇌 기능 활성화에 따른 기억력, 학습력, 외국어 습득력, 신체 활동력 등 모든 능력이 비약적으로 향상되는 것은 과학적으로는 가능하지만 현실세계는 혼란이 발생할 것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약물 중독의 부작용도 따져본 정 교수는 2011년 개봉한 이 영화가 지금 다시 제작된다면 AI(인공지능)를 만들어 주인공과 파트너 역할을 할 것이라는 상상도 덧붙였다.

21일 메가박스 부산극장 1관 영화 상영 도중 전은지 교수와 박상준 대표가 무대에 등장해 상상 시네마를 진행하고 있다. 부산과학기술협의회 제공

1996년 제1회 부산국제영화제 때 자원봉사자로 활동했다는 추억담도 꺼낸 정 교수는 “스크린에 재미있는 댓글이 달리는 등 코멘터러 상영 방식이 기발하다”고 했다. 몰려드는 관객들의 사진찍기와 사인 요청에 일일이 응대한 그는 인근 18번 완당집으로 옮겨 ‘부산의 맛’을 느끼고 열차 시간에 겨우 맞춰 도착할 BIFF 현장에서 색다른 경험을 만끽하고 귀가했다.

두 번째 프로그램 ‘상상 시네마’에서는 정은지(KAIST 항공우주공학과) 교수가 타임머신이나 타임 슬립 등을 이용해 시간여행을 할 때 발생하는 역설의 순간을 그린 호주 SF 영화 ‘타임패러독스’ 상영 도중 영상을 끊고 무대로 나와 박상준 대표와 함께 이채로운 ‘사이언스 토크’를 진행했다.전 교수는 “2015년 개봉한 10년 전 작품을 다시 접하니 미래를 보여주는 SF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객석에서는 시간여행의 현실론에 대한 질문이 쏟아졌다. 이에 대해 전 교수는 “과학적으로 미래 시간여행을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과거로 되돌리는 것은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영화 상영 중 도입된 사이언스 토크 시간에는 앞으로 전개될 내용에 대한 관객들의 상상력 넘치는 댓글이 이어졌다. 결국 자신의 현실이나 암울한 세상을 바꾸기 위한 시간여행에는 과거의 자신을 죽일 수도 있다는 역설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과거로 돌아가는 시간여행은 올바르지 않다는 반응도 많았다.

부산과학문화거점센터의 사이언스 토크 in 시네마 마지막 무대에서 오영진 교수와 박상준 대표가 객석을 향해 유쾌한 과학수다를 하고 있다. 부산과학기술협의회 제공

마지막 프로그램 ‘과학 수다’ 코너에서는 테크노컬처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오영진(서울과학기술대 교양대학) 교수가 2008년 개봉한 애니메이션 ‘월-E’를 관람하면서 박상준 대표와 유쾌한 토크를 나눴다.

텅 빈 지구에 홀로 남아 수백 년이라는 긴 시간 외롭게 일만 하는 폐기물 수거·처리용 로봇과 매력적인 탐사 로봇이 우주에서 펼치는 환상적인 모험 이야기를 통해 관객들은 로봇에 의존하는 인간의 퇴화 문제와 지구 미래에 대한 많은 의문을 제기했다. 영화 속에서 멀고 먼 우주 공간에서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길고 긴 공간 이동 등 날카로운 질문이 쏟아졌다. 현장에서는 빛보다 빠른 ‘초광속 도약’은 불가능한 이론이라는 등 정말 수다스러웠던 사이언스 토크는 유익한 내용으로 가득했다.

오 교수는 “미래 로봇과 인간의 공존 문제 등을 탐색하게 해 AI 시대인 지금 세상에 더 각별한 메시지를 던지는 작품이다”고 했다.

스크린 왼쪽 댓글창에는 “과학이 진짜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거나 “이런 시도의 영화관람이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다”는 등의 반응이 올라와 눈길을 끌었다. 커뮤니티비프 오용택 매니저는 “올데이시네마의 존재가치를 새롭게 부각시키고 있는 ‘사이언스 토크 in 시네마’를 위해 객석과 스크린을 연결하는 기술적 문제를 보완해 내년에는 더욱 진화한 형태로 진행하고 싶다”고 밝혔다.

21일 부산 남포동 BIFF광장에 마련된 부산과학문화거점센터의 영화원리 체험부스 현장. 부산과학기술협의회 제공

부산과학문화거점센터는 또 이날 메가박스 부산극장에서 진행한 ‘사이언스 in 시네마’와 별도로 지난 18일부터 BIFF광장에서 나흘간 ‘스톱모션 아틀리에’를 운영해 관광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 부스에서는 참가자들이 구체관절 인형으로 앱을 통해 스톱모션을 만들어보면서 영화원리를 교육받는 형태로 진행됐으며, 총 400여 명이 체험했다. 부스에는 외국인 관광객들의 참가도 많아 과학문화해설사들은 영문 교육 매뉴얼을 준비하는 등 세심하게 배려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과학창의재단의 특별한 관심을 받고 있는 부산과학문화거점센터 시그니처 특화 프로그램은 이번‘ 사이언스 토크 in 시네마’를 끝으로 ‘매직 사이언스’(6월 20~22일 영화의전당 Busan Sci-Magic Show)’, ‘뮤직 사이언스’(9월 7일 캠퍼스디 부산 앙상블 콘서트, 14일 부산문화회관 드림 사이언스), ‘반도체 사이언스’(15일 벡스코 국제탄화규소학술회의) 등 네 가지 항목이 모두 마무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