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닮은 모습 많아 친근감 생겼죠”
- 문화교류 여정 담은 다큐 제작도
- 12월엔 日 학생들 직접 韓 방문

한국과 일본 지도를 따라 놓인 조명들이 체육관 바닥에서 반짝인다. 260여 년 전 한국과 일본 양국을 잇던 조선통신사의 항로를 형상화한 투명한 도미노가 그사이 줄지어 세워진다. 조명이 반사되며 무지개 색깔로 빛나는 도미노를 뒤로 하고 한 학생이 외친다. “도쿄카라 간코쿠마데(도쿄에서 한국까지), 렛츠 고!”. 첫 번째 도미노가 쓰러지며 시작된 빛의 파노라마는 다음 도미노로, 그다음으로 이어지며 서서히 체육관을 환하게 물들인다.

부산 충렬고와 경혜여고, 일본 가이치고와 효고국제고 등이 진행한 ‘신통신사 프로젝트’의 ‘빛의 도미노 퍼포먼스’ 모습. 충렬고 이서연 교사 제공

지난 25일 부산 동구 조선통신사역사관에서 특별한 상영회가 열렸다. 부산 충렬고 학생들이 만든 다큐멘터리 ‘2025 신통신사 프로젝트’가 그 주인공. 이 작품은 충렬고 학생들이 기획부터 연출 촬영 편집 등 전 과정을 직접 주도한 15분 분량의 다큐멘터리로, 지난 3월부터 일본 사이타마현 가이치고(Kaichi Highschool)와 진행한 ‘신통신사 프로젝트’의 여정을 담은 기록물이다.

지난 25일 조선통신사역사관에서 열린 ‘신통신사 프로젝트’ 상영회에 참석한 프로젝트 참가자들이 소감을 말하고 있다. 왼쪽부터 충렬고 박세진, 정나무, 신주원 군. 김태훈 기자

‘신통신사 프로젝트’는 17~18세기 한일 평화외교의 상징이었던 ‘조선통신사’를 한일 청소년의 문화 교류 프로그램으로 재해석한 프로젝트다. 시작은 충렬고 이서연 교사의 아이디어에서 비롯됐다. 그는 “학교에서 역사 수업을 하다 보면 임진왜란이나 일제강점기처럼 갈등 중심의 한일 관계를 다룰 수밖에 없다”며 “앞으로의 세대가 평화롭고 성숙한 관계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연대와 문화 교류의 관점에서 한일 관계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기획했다”고 밝혔다.

프로젝트는 부산시교육청의 ‘화상국제교류 사업’을 통해 본격화했다. 가이치고가 프로젝트 참여 의사를 밝히면서 두 학교 1~2학년 학생 60여 명이 교류를 시작했다. 충렬고 이서연 교사와 가이치고 미하라 타다시 교사는 방과 후와 쉬는 시간을 활용해 조선통신사에 관한 별도의 수업을 운영했다. 학생들은 각자 조사한 내용을 바탕으로 발표 영상을 제작해 공유하고, 실시간 온라인 미팅을 통해 자기소개와 취미 등 다양한 주제로 소통하며 우정을 쌓았다.활동이 이어지며 교류의 외연도 넓어졌다. 충렬고와 가이치고의 교류 소식을 들은 부산 경혜여고와 일본 효고현 효고국제고도 프로젝트에 합류하며 참여 학교가 4곳으로 늘었다. 이들 학교 학생은 ‘학교생활’ ‘급식’ ‘방과 후 놀이’ ‘전통’ ‘취미’ 등 5가지 주제를 정해 브이로그 콘텐츠를 제작하고 이를 보여주며 온라인 토론을 통해 서로의 문화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충렬고 박세진(17) 군은 “일본 친구들의 학교생활과 취미 등을 브이로그로 보면서 한국과 닮은 부분이 생각보다 많다고 느끼며 친근감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지난 여름에는 미하라 교사가 직접 부산을 찾아 충렬고를 방문했고, 이에 대한 답례로 충렬고 학생들은 일본 전통 노래와 최신 가요를 익혀 공연을 선보이기도 했다. 그렇게 반년간 이어진 신통신사 프로젝트는 양국의 지도를 본뜬 조명 위에 조선통신사의 항로를 따라 도미노를 세우고, 이를 쓰러뜨리는 ‘빛의 도미노 퍼포먼스’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이번 프로젝트는 조선통신사의 ‘성신교린(誠信交隣·성실과 믿음으로 서로 사귄다)’ 정신을 양국 청소년들이 주도해 직접 되살렸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특히 일본 현지에서 해당 프로젝트에 대한 관심이 높다. 일본의 ‘유네스코 주간 공식 프로그램’으로 선정돼 오는 12월 5일 일본 내 유네스코학교로 가입된 고등학교에서 이들의 다큐가 방송되고, 12월 28일에는 일본 가이치고 학생 대표단이 부산을 방문할 예정이다. 프로젝트에 참여한 충렬고 신주원(17) 군은 “평소 어렵고 멀게만 느꼈던 일본을 더 가깝고 친근하게 여기는 계기가 됐다”며 “서로의 문화를 나누고 마음으로 느끼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외교라고 생각한다”고 소감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