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독일 슈뢰더 전 총리를 벤치마킹해야 한다는 보수 성향 전문가의 조언이 자주 들린다. 문 대통령도 지난달 G20 정상회의가 열린 독일을 방문해 과거 슈뢰더 정부가 ‘2010 어젠다’를 통해 개혁을 시도했지만 선거에 패했던 예를 들며 “고통스럽더라도 미래를 보고 내린 결단이 존경스럽고 그게 진정한 국가지도자로서의 자세”라고 했다. 보수 성향 전문가는 슈뢰더 총리의 정리해고 요건 완화, 실업급여 삭감 등 경제개혁 조치를, 문 대통령은 선거에 도움이 되지 않더라도 ‘나라를 나라답게’ 만든 그의 개혁 정신을 높이 산 것 같다.

독일 제14대 연방총리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의 개인적 삶은 물론 독일이 전범국가 이미지를 떨치고 문명국가로 안착한 과정을 보여주는 자서전이 발간됐다. 1998년 슈뢰더가 소속된 사민당은 40.9%(298석)의 지지를 얻어, 6.7%(47석)를 받은 녹색당과 연정을 구성해 집권 여당이 됐다. 당시 독일은 갑작스러운 통일로 정치·경제·사회적 혼란과 500만 명이 넘는 기록적 실업, 여전한 ‘전범 국가’라는 멍에, 50년간 한 번도 손보지 않은 사회보장제도 등 시급한 과제가 쌓여있었다. 슈뢰더는 ‘유럽의 환자’로 조롱받던 독일 사회를 개조하기 위해 총리직을 걸고 과감한 개혁을 단행했다. 그는 ‘캐치 올’(catch all) 전략을 내세워 일자리, 외교, 안보, 의료, 연금, 사회보장제도 등 모든 이슈를 쟁점화했다.

그는 ‘문명사회’를 가장 중요한 정치 화두로 삼고 낡은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 평등과 정의가 자본과 경쟁을 통제하는 사회를 만들어 나갔다.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외교를 선언하고 러시아 및 동구권과 협력을 강화했다. 해고방지법과 연금·의료보험 개혁을 다룬 ‘어젠다 2010’은 당시 지지층까지 등 돌리게 만들 정도로 공분을 산 개혁안이었지만, 지금 독일 경제가 부활한 원동력으로 재평가받는다. 박정민 기자 link@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