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가문 여성들, 독립운동사 주연으로 재조명해야”
오늘은 8.15... 여성독립硏·추모사업회, '안중근 家 여성록'출간
이준영 기자 ljy@kookje.co.kr
| 2021.08.12 20:04
- “동생 안성녀 등 역할 저평가돼
- 치열한 분투기·공훈 인정받길”
일제강점기 조국을 되찾기 위한 우리나라 독립운동 역사 속에서 저평가돼 온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치열했던 생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특히 안중근 의사와 독립군을 물심양면 도운 안 의사 가문 여성들의 분투기를 재조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진다.
한국여성독립운동연구소와 안성녀·오항선 추모기념사업회는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역사를 재해석하고 보존하기 위한 각종 사업을 추진 중이라고 12일 밝혔다. 두 기관은 지난 3월 여성 독립운동 기념관 건립 추진을 위한 발기인 대회와 학술행사를 개최한 바 있다. 지난달에는 안 의사의 모친인 조마리아, 여동생 안성녀, 부인 김아려, 조카 며느리 오항선과 조순옥, 조카 안미생 등의 활동을 담은 ‘안중근 家 여성록’이라는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그동안 이들에 대한 연구는 거의 없었다. 안중근 가문의 독립운동은 안 의사를 중심으로 이뤄졌고 여성은 뒷바라지한 정도로만 그려졌다. 안중근 가문에서 독립 유공자로 인정받은 13명 중 여성은 3명(조마리아, 오항선, 조순옥)뿐이다. 하지만 안 의사 집안 나머지 여성들도 모두 독립운동을 직·간접적으로 도운 것이 기록으로 나타나 있다.
특히 안 의사 여동생인 안성녀 여사의 생활은 한동안 베일에 싸여 있었다. 그러다 국제신문 취재팀이 2005년 8월 안 여사의 행적을 집중 취재하는 과정에서 안 여사의 며느리인 오항선 여사를 만나 증언을 들으면서 이를 토대로 파란만장했던 일생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다.안 여사는 중국 만주 러시아 등에서 독립운동을 도왔다. 산악지대에 추위를 견뎌야 하는 중국과 만주는 독립운동을 전개하기에 열악한 환경이었다. 이에 안 여사는 재봉틀 부대를 조직해 독립군 군복을 제작해 보급했다. 또 안 의사 사후에는 남편과 양복점을 차려 독립 자금과 문서를 전달하는 장소로 활용했으며 이 사실이 일본 경찰에 발각돼 15일간 고문을 당하기도 했다. 그는 해방 후 아들 내외와 귀국했으나 연고가 없어 생활고를 면치 못하다 1954년 별세했다. 그의 묘지는 현재 남구 용호동 천주교 모지에 있다. 심옥주 연구소장은 “안 의사에 대한 국민적 관심과 달리 안 여사는 부산에서 생활고를 겪다 생을 마감한 뒤에도 아들은 전보 보낼 돈이 없어 눈물지어야 했다”며 “안 의사의 모친 부인 여동생 며느리 등 일가 모두 애국심을 가슴에서 실천으로 뿜어내며 독립운동에 적극 동참한 또 다른 영웅으로 이들의 활동이 지금이라도 재조명돼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오 여사 등 독립 유공자들이 살았던 남구 대연동 광복촌에 대한 이야기도 새롭게 알려지고 있다. ‘안중근 家 여성록’ 책에도 이 같은 내용이 담겼다. 광복촌은 1970년대 초 대연동 산99 일대에 조성된 독립 유공자 거주 마을로, 당시 오 여사 등 약 40명이 거주했다. 이 외에도 김재덕 오서희 이길영 등 이곳에서 실제 거주했던 17명의 활동 이력이 담겼다. 권순일 연구소 사무국장은 “나라를 되찾고자 온갖 고초를 겪은 안 의사 가문의 여성 독립운동가들 역할이 지금이라도 공훈을 인정받고 명예를 회복할 수 있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준영 기자
- 치열한 분투기·공훈 인정받길”
일제강점기 조국을 되찾기 위한 우리나라 독립운동 역사 속에서 저평가돼 온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치열했던 생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특히 안중근 의사와 독립군을 물심양면 도운 안 의사 가문 여성들의 분투기를 재조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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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중근 의사의 차남 안준생의 장례식 때 찍힌 안 의사 여동생 안성녀(왼쪽 사진 왼쪽 네 번째) 여사와 안 의사의 조카 며느리인 오항선 여사. 이 사진들은 최근 출간된 ‘안중근 家(가) 여성록’에 실려있다. 한국여성독립운동연구소 제공 |
특히 안 의사 여동생인 안성녀 여사의 생활은 한동안 베일에 싸여 있었다. 그러다 국제신문 취재팀이 2005년 8월 안 여사의 행적을 집중 취재하는 과정에서 안 여사의 며느리인 오항선 여사를 만나 증언을 들으면서 이를 토대로 파란만장했던 일생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다.안 여사는 중국 만주 러시아 등에서 독립운동을 도왔다. 산악지대에 추위를 견뎌야 하는 중국과 만주는 독립운동을 전개하기에 열악한 환경이었다. 이에 안 여사는 재봉틀 부대를 조직해 독립군 군복을 제작해 보급했다. 또 안 의사 사후에는 남편과 양복점을 차려 독립 자금과 문서를 전달하는 장소로 활용했으며 이 사실이 일본 경찰에 발각돼 15일간 고문을 당하기도 했다. 그는 해방 후 아들 내외와 귀국했으나 연고가 없어 생활고를 면치 못하다 1954년 별세했다. 그의 묘지는 현재 남구 용호동 천주교 모지에 있다. 심옥주 연구소장은 “안 의사에 대한 국민적 관심과 달리 안 여사는 부산에서 생활고를 겪다 생을 마감한 뒤에도 아들은 전보 보낼 돈이 없어 눈물지어야 했다”며 “안 의사의 모친 부인 여동생 며느리 등 일가 모두 애국심을 가슴에서 실천으로 뿜어내며 독립운동에 적극 동참한 또 다른 영웅으로 이들의 활동이 지금이라도 재조명돼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오 여사 등 독립 유공자들이 살았던 남구 대연동 광복촌에 대한 이야기도 새롭게 알려지고 있다. ‘안중근 家 여성록’ 책에도 이 같은 내용이 담겼다. 광복촌은 1970년대 초 대연동 산99 일대에 조성된 독립 유공자 거주 마을로, 당시 오 여사 등 약 40명이 거주했다. 이 외에도 김재덕 오서희 이길영 등 이곳에서 실제 거주했던 17명의 활동 이력이 담겼다. 권순일 연구소 사무국장은 “나라를 되찾고자 온갖 고초를 겪은 안 의사 가문의 여성 독립운동가들 역할이 지금이라도 공훈을 인정받고 명예를 회복할 수 있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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