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여년 묶인 그린벨트 일부 해제
- LH 강서신도시사업 포기 타격
- 부산시 개발사업도 잇따라 보류
- 땅값 급등 탓에 기업체 투자 무산
- 2만 명 넘던 인구, 현재는 7900명
- 고령자비율 23.7%, 시 평균의 배
- 신장로 재생사업 등에 활력 기대
신도시 개발 바람을 타고 뜬 부산 강서구 대저1동이 쇠락하고 있다. 대형개발사업으로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강서구의 모습과는 대조적이다. 대저1동은 한때 강서구를 대표하는 부촌이었다. 강서구청이 있고, 도시철도·경전철 역사 5곳이 들어서 강서구 교통의 요충지이다.
하지만 예정된 개발사업이 줄줄이 취소되면서 대저1동의 영광은 빛이 바랬다. 날이 갈수록 인구는 줄고 있다. 아이들이 뛰노는 소리는 사라졌다. 대저1동 주민은 수년째 시 정책에서 외면받는다며 대책 마련을 요구하지만, 시는 아직 뾰족한 대책을 내놓지 못한다.
■그린벨트에 묶여 침체
대저1동은 일제강점기에 발전하기 시작했다. 2014년 발행된 강서구지(區誌)를 보면, 일제강점기였던 1908년 일제가 동양척식주식회사를 설립한 이후 일본인 농부들을 당시 대저면 출두리에 이주시킨 것이 대저1동 발전의 서막이었다. 이곳은 낙동강 하구 삼각주 지역에 자리잡아 농토가 비옥하다. 일제가 농산물을 유통하려고 1933년 구포다리를 건립하고, 1935년 부산~마산 국도 14호선을 완공했다. 이후 대저동은 작은 도시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당시 대저1동에서 생산된 배(梨)는 일본을 넘어, 동남아 지역까지 수출되며 '구포배'라는 이름으로 명성을 날렸다.
대저1동은 1978년 부산에 편입되기 이전 김해군 대저읍에 속했다. 1993년 일제가 만든 구포다리 옆에 구포대교가 새로 놓였다. 2005년에는 도시철도 3호선 역이 들어섰다.
하지만 1971년 대저1동의 대부분 지역이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으로 지정되면서 대저1동은 활력을 잃었다. 이로써 주민은 재산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했다. 주민들은 그린벨트를 풀어달라고 정부에 지속해서 건의했다. 42년이 지난 2013년 강서구의 그린벨트는 일부 해제됐다. 강서구의 자료를 보면 대저1동 행정구역 면적은 총 1774만5783㎡이다. 이 중 1971년 그린벨트로 지정됐던 지역은 1072만8062㎡에 달한다. 그린벨트가 해제된 지역은 400만1249㎡다.
■개발사업 잇단 실패
그린벨트가 풀리게 된 데는 2010년 12월 한국토지주택공사(당시 한국토지공사·이하 LH)의 강서신도시사업 포기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있다. 2005년 부산시와 LH는 대저1동 일원에 강서신도시 개발사업 시행을 체결했다. 2007년 6월에는 대저1동 일원 490만9000㎡가 택지개발 예정지구로 지정됐다. 하지만 2010년 LH는 재정난을 이유로 사업을 철회했다. 이후 부작용이 잇달았다. 땅값이 급등했다. 실제 진행되는 사업은 없는데 장밋빛 개발 계획만 발표된 탓이다.
이는 다른 개발사업을 도미노식으로 무너뜨렸다. 지난해 10월 부산시는 대저신도시 개발사업을 보류한다고 발표했다. 대저신도시 개발사업은 2025년까지 도시철도 강서구청역~ 대저역 1.07㎢ 지역을 업무시설, 주거시설, 상업시설 등이 섞인 복합형 신도시로 조성하는 것이다. 사업이 보류된 배경에는 급등한 땅값이 있었다. 시가 발표한 자료를 보면, 해당 대지의 공시지가는 2003년 ㎡당 9만 원이었다. 사업 진행을 앞두고 ㎡당 28만5000원으로 급등했다.
지역 부동산업계는 2010년 LH의 대저신도시 사업 포기 이후 땅값이 3, 4배 오른 것으로 분석한다. 대저1동 지역의 상가 임대료도 급등했다. 대저1동 신장로의 한 신축 건물은 한동안 임차인을 구하지 못했다. 한때는 세계적인 가구유통체인 이케아(IKEA)가 대저1동에 들어올 것이라는 소문도 있었지만, 이 역시 비싼 땅값 때문에 무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강서구 관계자는 "대저1동 지역에 진행되는 개발사업이 없는데도, 땅값은 계속 오른다. 인근 에코델타시티 사업 등으로 인한 개발 기대감이 영향을 미친 것 같다"고 말했다.
■도시 재생…대저1동 살릴까
대저1동 인구는 꾸준히 줄고 있다. 1990년 2만2778명에 달하던 대저1동 인구는 2000년 1만3163명으로 줄었다. 2010년에는 1만 명 벽이 깨지면서 8656명으로 집계됐다. 지난달 기준 대저1동 인구는 7982명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명지동의 인구 증감과 비교하면 대저1동의 쇠락은 더욱 선명해진다. 1990년 명지동 인구는 1만577명에 불과했지만, 2010년 1만9002명으로 늘었고, 지난달 4만5185명으로 급증했다. 대저1동의 고령자 비율은 지난해 12월 기준 부산시 평균 13.2%의 배에 가까운 23.7%인 것으로 조사됐다.
강서구는 대저1동을 살리기 위한 작업에 돌입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신장로 재생사업이다. 이 사업은 지난 1월 국가지원 도시재생사업에 선정됐다. 5년간 국·시비 100억 원을 받는다. 강서구는 부산문화재단과 함께 신장로 일대에 문화예술 사업을 통해 젊은이들이 모일 수 있는 곳을 만들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신혼부부를 위한 33㎡(10평) 안팎의 소규모 행복주택 45가구도 건립하려고 LH와 협의를 마쳤다. 하지만 효과는 미지수다. 대저1동 일부 주민들은 문화예술 프로그램보다 실제 주민들에게 도움이 되는 시설이 들어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서석복 대저1동 통장단장은 "부산시 서부산 청사 유치 등 획기적인 방안이 있어야 대저1동이 살아날 수 있다"고 말했다.
# 서석복 통장단장
- "서부산 대개발에 대저1동은 쏙 빠져…부산시 관심 필요"
"대저1동 주민이 부산 시민 맞습니까? 시가 우리를 부산시민으로 생각한 적이 한 번이라도 있습니까?"
서석복(64·사진) 대저1동 통장단장은 이렇게 말했다. 그는 대저1동에서 태어나서 줄곧 이곳에 살았다. 2010년 신도시 사업을 접고 떠난 한국토지주택공사(LH)를 성토하는 데 앞장서기도 했다.
서 단장은 대저1동이 몰락한 것은 시가 외면해서라고 주장했다. 1978년 2월 대저동이 부산으로 편입되면서 지역 주민들은 대저1동이 개발될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시와 중앙정부의 엇박자로 주민들은 재산권 행사를 하지 못한 채 피해만 보고 있다는 것이다. "대저1동 주민들은 부산에 편입되면서 오히려 피해를 봤습니다. 김해는 농촌진흥지역이어서 농가에 혜택이 돌아가지만, 부산이 우리에게 대체 뭘 해줬습니까."
그는 골목마다 아이들이 뛰어놀던 대저1동의 모습을 기억한다. 1978년 대저1동이 부산시에 편입되기 직전의 모습이다. 하지만 대저1동이 시로 편입되고, 예정됐던 대규모 개발사업이 줄줄이 취소되면서 주민들은 점차 사라지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모습은 이제 찾아보기 힘들다. 당시 '대저면장이 양산군수보다 낫다'는 말은 옛말이 돼 버렸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제 사람이 그리울 지경입니다. 먹고 살자고 나가는 사람들을 막을 수도 없는 노릇 아닙니까."
서 단장은 시의 '2030 도시개발 기본계획'에 대저1동과 관련된 계획이 하나도 없다는 점을 꼬집었다. 대대적인 서부산 개발이 이뤄지는데, 가장 낙후한 지역인 대저1동을 발전시키기 위한 내용은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교도소와 김해소년원 등 다른 지역에서 꺼리는 시설이 많아 시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명지동은 일부 구역을 빼면 농지로서의 가치가 크지 않았기 때문에 먼저 개발되는 것이 타당하다고 봅니다. 하지만 대저1동에도 어느 정도의 관심은 보여줘야 하는 것 아닙니까?"
가장 시급한 부분이 뭐냐는 질문에 서 단장은 현재 대저1동 대부분이 속한 1종 주거지역을 2종 준주거지역으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1종 주거지역은 저층 주택 중심으로 4층 이하를 지을 수 있다. 용적률이 높지 않아 투자가 더딜 수밖에 없다. 이는 자연스레 대저1동의 쇠락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서 단장은 "더는 대저1동 사람들이 시나 중앙정부를 믿을 수 없습니다. 대저1동 주민을 부산시민으로 생각한다면, 시가 대책을 마련해야 합니다"고 말했다.
김준용 기자 jykim@kookje.co.kr
- LH 강서신도시사업 포기 타격
- 부산시 개발사업도 잇따라 보류
- 땅값 급등 탓에 기업체 투자 무산
- 2만 명 넘던 인구, 현재는 7900명
- 고령자비율 23.7%, 시 평균의 배
- 신장로 재생사업 등에 활력 기대
신도시 개발 바람을 타고 뜬 부산 강서구 대저1동이 쇠락하고 있다. 대형개발사업으로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강서구의 모습과는 대조적이다. 대저1동은 한때 강서구를 대표하는 부촌이었다. 강서구청이 있고, 도시철도·경전철 역사 5곳이 들어서 강서구 교통의 요충지이다.
하지만 예정된 개발사업이 줄줄이 취소되면서 대저1동의 영광은 빛이 바랬다. 날이 갈수록 인구는 줄고 있다. 아이들이 뛰노는 소리는 사라졌다. 대저1동 주민은 수년째 시 정책에서 외면받는다며 대책 마련을 요구하지만, 시는 아직 뾰족한 대책을 내놓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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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일 부산 강서구청에서 바라본 대저1동 전경. 서정빈 기자 photobin@kookje.co.kr |
대저1동은 일제강점기에 발전하기 시작했다. 2014년 발행된 강서구지(區誌)를 보면, 일제강점기였던 1908년 일제가 동양척식주식회사를 설립한 이후 일본인 농부들을 당시 대저면 출두리에 이주시킨 것이 대저1동 발전의 서막이었다. 이곳은 낙동강 하구 삼각주 지역에 자리잡아 농토가 비옥하다. 일제가 농산물을 유통하려고 1933년 구포다리를 건립하고, 1935년 부산~마산 국도 14호선을 완공했다. 이후 대저동은 작은 도시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당시 대저1동에서 생산된 배(梨)는 일본을 넘어, 동남아 지역까지 수출되며 '구포배'라는 이름으로 명성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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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장로에 차량이 지나가고 있다. |
하지만 1971년 대저1동의 대부분 지역이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으로 지정되면서 대저1동은 활력을 잃었다. 이로써 주민은 재산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했다. 주민들은 그린벨트를 풀어달라고 정부에 지속해서 건의했다. 42년이 지난 2013년 강서구의 그린벨트는 일부 해제됐다. 강서구의 자료를 보면 대저1동 행정구역 면적은 총 1774만5783㎡이다. 이 중 1971년 그린벨트로 지정됐던 지역은 1072만8062㎡에 달한다. 그린벨트가 해제된 지역은 400만1249㎡다.
■개발사업 잇단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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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저로 상가에 손님이 없어 한산하다. |
이는 다른 개발사업을 도미노식으로 무너뜨렸다. 지난해 10월 부산시는 대저신도시 개발사업을 보류한다고 발표했다. 대저신도시 개발사업은 2025년까지 도시철도 강서구청역~ 대저역 1.07㎢ 지역을 업무시설, 주거시설, 상업시설 등이 섞인 복합형 신도시로 조성하는 것이다. 사업이 보류된 배경에는 급등한 땅값이 있었다. 시가 발표한 자료를 보면, 해당 대지의 공시지가는 2003년 ㎡당 9만 원이었다. 사업 진행을 앞두고 ㎡당 28만5000원으로 급등했다.
지역 부동산업계는 2010년 LH의 대저신도시 사업 포기 이후 땅값이 3, 4배 오른 것으로 분석한다. 대저1동 지역의 상가 임대료도 급등했다. 대저1동 신장로의 한 신축 건물은 한동안 임차인을 구하지 못했다. 한때는 세계적인 가구유통체인 이케아(IKEA)가 대저1동에 들어올 것이라는 소문도 있었지만, 이 역시 비싼 땅값 때문에 무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강서구 관계자는 "대저1동 지역에 진행되는 개발사업이 없는데도, 땅값은 계속 오른다. 인근 에코델타시티 사업 등으로 인한 개발 기대감이 영향을 미친 것 같다"고 말했다.
■도시 재생…대저1동 살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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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서구는 대저1동을 살리기 위한 작업에 돌입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신장로 재생사업이다. 이 사업은 지난 1월 국가지원 도시재생사업에 선정됐다. 5년간 국·시비 100억 원을 받는다. 강서구는 부산문화재단과 함께 신장로 일대에 문화예술 사업을 통해 젊은이들이 모일 수 있는 곳을 만들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신혼부부를 위한 33㎡(10평) 안팎의 소규모 행복주택 45가구도 건립하려고 LH와 협의를 마쳤다. 하지만 효과는 미지수다. 대저1동 일부 주민들은 문화예술 프로그램보다 실제 주민들에게 도움이 되는 시설이 들어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서석복 대저1동 통장단장은 "부산시 서부산 청사 유치 등 획기적인 방안이 있어야 대저1동이 살아날 수 있다"고 말했다.
# 서석복 통장단장
- "서부산 대개발에 대저1동은 쏙 빠져…부산시 관심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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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석복(64·사진) 대저1동 통장단장은 이렇게 말했다. 그는 대저1동에서 태어나서 줄곧 이곳에 살았다. 2010년 신도시 사업을 접고 떠난 한국토지주택공사(LH)를 성토하는 데 앞장서기도 했다.
서 단장은 대저1동이 몰락한 것은 시가 외면해서라고 주장했다. 1978년 2월 대저동이 부산으로 편입되면서 지역 주민들은 대저1동이 개발될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시와 중앙정부의 엇박자로 주민들은 재산권 행사를 하지 못한 채 피해만 보고 있다는 것이다. "대저1동 주민들은 부산에 편입되면서 오히려 피해를 봤습니다. 김해는 농촌진흥지역이어서 농가에 혜택이 돌아가지만, 부산이 우리에게 대체 뭘 해줬습니까."
그는 골목마다 아이들이 뛰어놀던 대저1동의 모습을 기억한다. 1978년 대저1동이 부산시에 편입되기 직전의 모습이다. 하지만 대저1동이 시로 편입되고, 예정됐던 대규모 개발사업이 줄줄이 취소되면서 주민들은 점차 사라지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모습은 이제 찾아보기 힘들다. 당시 '대저면장이 양산군수보다 낫다'는 말은 옛말이 돼 버렸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제 사람이 그리울 지경입니다. 먹고 살자고 나가는 사람들을 막을 수도 없는 노릇 아닙니까."
서 단장은 시의 '2030 도시개발 기본계획'에 대저1동과 관련된 계획이 하나도 없다는 점을 꼬집었다. 대대적인 서부산 개발이 이뤄지는데, 가장 낙후한 지역인 대저1동을 발전시키기 위한 내용은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교도소와 김해소년원 등 다른 지역에서 꺼리는 시설이 많아 시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명지동은 일부 구역을 빼면 농지로서의 가치가 크지 않았기 때문에 먼저 개발되는 것이 타당하다고 봅니다. 하지만 대저1동에도 어느 정도의 관심은 보여줘야 하는 것 아닙니까?"
가장 시급한 부분이 뭐냐는 질문에 서 단장은 현재 대저1동 대부분이 속한 1종 주거지역을 2종 준주거지역으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1종 주거지역은 저층 주택 중심으로 4층 이하를 지을 수 있다. 용적률이 높지 않아 투자가 더딜 수밖에 없다. 이는 자연스레 대저1동의 쇠락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서 단장은 "더는 대저1동 사람들이 시나 중앙정부를 믿을 수 없습니다. 대저1동 주민을 부산시민으로 생각한다면, 시가 대책을 마련해야 합니다"고 말했다.
김준용 기자 jykim@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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