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신문 기자로 언론인의 길에 들어선 조갑제 대표는 부마항쟁의 기폭제가 된 1979년 10월 16일 밤 부산 중구 남포동 시위 현장을 떠올리며 “그 순간, 박정희 정권이 끝난 것 아니냐 하는 느낌이 왔다”고 말했다. 당시 사회부 기자로 부산진경찰서를 출입하던 그는 “부산대학교 학생들이 남포동에서 군중과 합세해 경찰 작전차를 뒤엎었고, 경찰 작전차가 불타면서 화염이 치솟는 장면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고 회상했다. 그때 박정희 정권의 몰락을 직감했다는 것이다.남포동 시위 바로 다음날 밤에 비상계엄령이 선포됐고, 그 불길은 경남 마산으로 옮겨 붙어 부마민주항쟁(1979년 10월 16~20일)이 일어났다. 그 열흘 뒤에 10·26 사건이 발생했는데, 조 대표는 “‘역사가 이렇게 전개되는구나’ 실감을 했다”며 “10·26 사건이 발생했을 때 ‘부마민주항쟁이 역사적인 사건이 됐구나’ 생각해서 그때부터 책을 쓰기 위한 취재를 했다”고 전했다.
그의 저서는 5공화국 때는 빛을 보지 못하고 1987년에야 출간됐다. 조 대표는 자신의 저서 ‘유고’가 부마민주항쟁의 유일한 종합적 기록이자, 기자가 취재한 첫 기록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조 대표는 “부마민주항쟁 이후 12·12 사태, 광주사태(5·18 민주화운동)도 취재하고 제5공화국까지, 당시 7개월은 제가 기자로서 체험하고 또 기록을 남겼다”며 “기자가 역사와 만나면 좋은 기록을 만든다. 기자는 기록자이면서 역사를 만들어내는 사람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아울러 “그게 다 대학(수산대·현 부경대) 졸업도 안 한 상태에서 1971년 국제신문에 수습기자로 들어가 일한 데 따른 행운이었다”고 국제신문과의 인연을 강조했다.
그의 저서는 5공화국 때는 빛을 보지 못하고 1987년에야 출간됐다. 조 대표는 자신의 저서 ‘유고’가 부마민주항쟁의 유일한 종합적 기록이자, 기자가 취재한 첫 기록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조 대표는 “부마민주항쟁 이후 12·12 사태, 광주사태(5·18 민주화운동)도 취재하고 제5공화국까지, 당시 7개월은 제가 기자로서 체험하고 또 기록을 남겼다”며 “기자가 역사와 만나면 좋은 기록을 만든다. 기자는 기록자이면서 역사를 만들어내는 사람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아울러 “그게 다 대학(수산대·현 부경대) 졸업도 안 한 상태에서 1971년 국제신문에 수습기자로 들어가 일한 데 따른 행운이었다”고 국제신문과의 인연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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