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윤희에게’ 스틸컷. 사진 = DAUM 영화

영화 ‘윤희에게’(임대형, 2019)에 대한 평가를 지금 내리기에는 아무래도 조심스러운 면이 있다. ‘윤희에게’는 지난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작으로 관객들과 처음 만나 올해 11월 정식 개봉했다. 서른 개도 안 되지만 아직 상영관도 있고, 지난 20일 VOD 서비스로 출시됐으니 예비 관객도 꽤 남아있는 셈이다. 볼 사람들이 남아있는 영화라는 뜻은 아직 충분한 평가를 받지 못했다는 말이기도 하다. 긴 세월로부터 재조명 받고 다시 인기를 얻는 경우는 많다. 영화 ‘노트북’(닉 카사베츠 감독)은 2004년 개봉작이지만 그로부터 12년이 지난 2016년 재개봉해 16만 관객이 들었다. 역시 2004년 개봉작인 영화 ‘이터널 선샤인’(미셸 공드리 감독)은 2015년 재개봉해 개봉 당시보다 두 배나 많은 관객을 기록했다. 더 많은 관객이 들면서 작품의 수명도 그만큼 길어져 언제 다시 재개봉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조심스럽다는 뜻이다. 작품 자체만 두고서 이야기하자면 모를까, 영화에다 어떤 평가를 딱지처럼 붙여버리기에는 이른 감이 있는 것 같다. 고민 끝에 ‘저평가받은 2019년 개봉작’이라는 말 대신 ‘조금만 더 조명받길 바라는 2019년 개봉작’으로 수식어를 바꿔서 ‘윤희에게’를 소개하기로 한다.

고민을 만들기 시작하는 지점은 ‘우리 부모님을 기억하냐’는 쥰(나카무라 유코)의 대사였다. 특히 ‘우리’라는 말은 개인적으로 다양하게 해석할 여지를 남겨주었다. 두 번 정주행 끝에 내린 결론을 앞세워 말하자면, 이 대사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아예 다른 쪽에서 새로운 영화를 만날 수도 있다. 아무리 ‘친구’가 일본에 산다고 영화에서 몇 번을 말해도 곧게 들리지 않고, 마치 불행한 일로 헤어진 자매가 서로를 남 취급하는 것처럼 들리는 것이다. 그래도 내가 잘못 해석했다고 보지는 않는다. ‘우리’ 부모님이라는 표현은 분명 중의적이다.

그렇게 보면 엉뚱한 해석에도 나름 핑계거리가 있다. 쥰은 부모의 이혼으로 아버지를 따라 한국에서 일본으로 건너가 고모와 함께 살고 있다. 자신을 일본으로 이끌었던 부친은 세상을 떠났다. 반면 윤희(김희애)의 부모가 살아있는지는 영화에서 말해주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있는지 없는지 모른다. 단지 윤희에게는 오빠(김학선)가 한 명 있는데 관계는 썩 좋지 않다. 딸(김소혜)에게 ‘오빠 사진관에 신세 지지 말라’고 하는 당부부터 그렇다. 그러니 모든 가능성을 두고 영화에 접근하자면, 자매였던 쥰과 윤희는 부모의 이혼으로 오랫동안 떨어져 왕래 없이 살았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고 본다. ‘김희애와 닮은 배우를 용케 섭외했구나’ 하는 생각마저도 든다. 머리에 이미 자매일 수 있다는 의심이 꽉 차면 극중 윤희가 딸 새봄에게 “엄마 친구 여기 사는 거 알고 있지?”라고 아무리 말해도, 딸에게 자매의 존재를 숨기고 있는 어머니로밖에 안 보인다. ‘인 서울’한 새봄과 함께 서울로 올라와 새출발하는 윤희가 쥰에게 쓴 편지를 읽어 내려가기 직전까지도 나는 이들이 자매일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생각해보면 쥰이 그렇게 독신 분위기를 뿜어내며 성소수자 분위기를 연출했는데도 말이다.

영화 ‘윤희에게’ 촬영 현장. 사진 = DAUM 영화

그런데 영화의 의도와 다른 해석으로 흘렀어도 핵심 메시지는 놓치지 않을 수 있었을 뿐더러, 놀랍게도 개인적으로는 스스로의 편견과 마주 앉는 기회를 얻기도 했다. 왜 연인일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을까. 연인일 수도 있는데 왜 꼭 남매일 거라고만 생각했을까. “혹시 여전히 여성 중심 서사를 신파에 묶어두려는 고약한 습성을 스스로 숨기지 못한 게 아닐까.” 아니면 아직도 동성애의 가능성을 스스로 일축해버리는 편견을 벗지 못한 것일까. 그러면서 혼자 감탄하며 내놓는 반응이라는 게 크, 영화가 설계를 촘촘하게 잘해서 울림이 있네, 했다. 이 영화를, 말하자면 일종의 반전영화 즐기듯 한 사람이 나 말고 또 있는지 궁금하다. 내 편, 또 있을까?

그러니 ‘윤희에게’는 꼭 나와 같은 편견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은 사람에게 편하게 권하고 싶은 영화다. 그렇다고 이 영화를 ‘한국판 ’캐롤‘(토드 헤인즈, 2016)’이라며 편하게 동성애 코드로 묶어버리는 쉬운 감상에는 좀 반대하고 싶다. 이 영화는 분명 성소수자인 윤희를 중심으로 흘러가는 서사이지만, 등장인물 한 명 한 명이 어떤 사회적인 역할로서가 아니라 그 자체의 인격체로서 행복한 삶을 살아가길 응원해주는 영화다. 첫 등장만으론 왠지 나빠 보이는 윤희의 이혼남(유재명)에게도, 심지어 윤희를 끝까지 묶어두려는 오빠에게도 영화는 ‘행복하라’고 한다. 특히 이 장면에선 갚을 빚 없이 온전한 나의 모습으로 살아가겠다는 다짐도 함께 보여준다. 그러니 충분히 행복할 수 있었던 2019년을 죄책감에 시달려 보냈던 많은 이들에게도 ‘윤희에게’는 유효한 영화일 것이라 본다. 회복하고 싶은 관계를 앞에 두고 망설이고 있는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다. 노파심이지만, 예비 관객이라면 ‘‘윤희에게’ = 동성애 영화’라는 등식을 함부로 붙여버린 어떤 평가에도 사로잡히지 말고, 철저히 각자의 시선에서 영화를 편하게 마주하라고 권하고 싶다. 난독증 수준으로 영화를 해석했던 나처럼도 얼마든지 괜찮다. 영화가 꽤 친절해서 아무리 헤매어도 끝에 가면 다 만나게 돼 있다.

방심한 탓에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식 표를 구하지 않았던 필자는 11월 쏟아지던 개봉작들 사이에서 겨우 짬을 내어 ‘윤희에게’를 볼 수 있었다. 사실 영화제 당시 꽤 많은 관심을 받는 작품이었고, 당연히 매진이었던데다 보고 나온 이들의 평가도 호평이 많아 꽤 관객이 들 줄 알았다. 보니 누적 관객이 11만 2000명을 조금 넘었는데, 독립영화가 거둔 성적이니 꽤 흥행했다고도 보겠지만. 사실 조금 더 조명받으면 어떨까 싶은 영화다. VOD가 출시된 직후라 소개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타이밍 같아 편안한 마음이다. 올해 개봉작으로 치면 ‘윤희에게’와 같은 영화가 꼭 한 편 더 있다. 조금만 더 많은 사람들이 알면 좋겠다 싶은 영화, 다음 편에서 다룰 영화 ‘애드 아스트라’(제임스 그레이, 2019)다. 신동욱 기자 woogy0213@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