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대구 동구 대회의실에 마련된 고 정궁호(74) 기장의 분향소에서 동료였던 동구 산불진화대원들이 조문하고 있다. 연합뉴스

고 정궁호(74) 기장을 추모하는 분향소가 9일 대구 북구 무태조야동 행정복지센터에 차려졌습니다. 그를 알지 못하지만, 많은 조문객이 영정 앞에 흰 국화 한 송이씩 올리며 희생을 추모했습니다. 경찰 등 각 기관도 조화를 보내 그의 헌신을 기렸습니다. 분향소는 오는 11일까지 사흘간 운영합니다. 같은 기간 대구 동구청 대회의실에도 분향소가 마련됩니다.

고 정 기장은 지난 6일 대구 북구 서변동 산불 현장에서 진화 작업을 하던 중 임차 헬기가 추락해 목숨을 잃었습니다. 사고 장면을 비춘 CCTV엔 그가 탑승한 헬기가 뒤집힌 채로 추락하는 장면, 여러 시민이 그를 구조하려 애쓰는 모습이 담겼습니다. 사고 헬기는 대구 동구청 임차 헬기로, 생산된 지 44년 지난 벨(BELL) 206L 기종입니다. 미국 ‘벨 헬리콥터’가 1981년 제작했습니다.

지난달 26일 경북 산불 진화에 투입됐던 임차 헬기도 의성군 신평면에서 추락해 고 박현우(73) 기장이 순직했습니다. 추락 헬기는 강원 인제군이 임차한 것으로, 1995년 생산돼 30년 가깝게 운항했습니다.

재난을 누군가의 희생으로 막는 ‘비극’이 되풀이됩니다. 최근 전국에 ‘괴물 산불’이 날뛰면서 진화에 나선 헬기가 불과 열흘 남짓 기간에 잇따라 추락한 탓입니다. 모두 지자체가 임차한 노후 헬기입니다.

지난달 26일 오후 경북 의성군 신평면 교안리 야산에 산불 진화용 헬기가 추락해 당국이 사고 수습하고 있다. 연합뉴스

산림청은 현재 운용 중인 산불 진화 헬기의 70% 이상이 제작된 지 20년 넘은 노후 기체로 파악합니다. 운항 기간 20년을 초과하면 ‘경년 항공기’로 분류해 국토교통부가 특별 관리합니다. 하지만 산불 진화 헬기는 내구연한이 법적으로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노후 헬기라도 정비 상태가 양호하면 운항할 수 있습니다.

헬기는 재난이나 위급 상황에 꼭 필요합니다. ‘닥터헬기’의 중요성은 누구나 압니다. 의학 드라마에 중요 소재로도 자주 활용됩니다. 이처럼 헬기는 산불 진화 등 소방, 응급환자 이송, 물자 수송을 비롯해 경찰과 군의 비상 상황 대응에 필수로 사용됩니다.

이 요긴한 헬기가 자꾸 사고 나는 건 큰 문제입니다. 누군가를 살리려다 다른 누군가가 생명을 잃고, 재난 위에 또 다른 참사를 얹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원인을 한 가지로 단정할 수는 없지만, 오래된 기체가 발단이 됐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노후 헬기에 따른 위험은 부산도 예외가 아닙니다. 국제신문 취재 결과 부산시가 업체에서 임차한 헬기는 중형 1대, 소형 1대로 각각 기령이 43년, 20년입니다. 부산에 산불이 나면 출동하는 산림청 양산산림항공관리소 보유 헬기 역시 중형(2대)은 25~26년, 소형(3대)은 34~35년 운항했습니다. 지자체마다 예산 부족 탓에 임차하기가 버겁고, 공급이 부족해 연간 20억 원가량 예산을 투입해도 임차 헬기 구하기가 쉽지 않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이렇게 방치해선 안 되겠습니다. 전문가들은 이번 ‘괴물 산불’을 겪으며 헬기의 법적 내구연한을 정하고, 조종사의 열악한 근무 여건을 개선해야 한다고 입을 모읍니다. 구체적, 실효적 논의가 이뤄지기를 바랍니다.

고 정궁호, 박현우 기장의 명복을 빕니다. 사회는 두 분의 명예를 기억해야겠습니다.

9일 부산의 한 헬기장에서 정비사가 산불 진화용 임차 헬기를 정비하고 있다. 이원준 기자 windstorm@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