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 ‘뭐라노’의 마스코트 라노입니다. 언제 들어도 안타까운 소식들이 있죠. 최근 라노를 가장 마음 아프게 한 소식은 전북 전주에서 있었던 한 40대 여성의 사망사건이에요. 위기가구임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도움을 받지 못하고 안타깝게 사망했죠. 사실 이 전에도 비슷한 사건은 여러 번 있었어요.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사건이 반복되고 있어요.

숨진 40대 여성이 살았던 빌라 현관문 앞에 아이의 것으로 추정되는 기저귀 박스가 놓여 있다. 연합뉴스

지난 8일 오전 9시 55분 전북 전주의 한 빌라에서 40대 여성 A 씨가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A 씨의 곁에는 생후 20개월 전후로 추정되는 아이가 의식을 잃은 채 쓰러져 있었습니다. A 씨는 극심한 생활고를 겪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건강보험료는 56개월 치를 내지 못해 체납액이 118만6350원에 달했고, 관리비나 가스 요금, 전기 요금 등도 내지 못할 정도였죠.

보건복지부는 건강보험료 체납이나 단전·단수 등 39가지 위기 정보를 토대로 위기의심가구를 발굴하고 있습니다. A 씨는 공과금 등을 체납해 이미 정부의 복지 사각지대 발굴 시스템에 포착된 상황이었죠. 보건복지부는 지난 7월 A 씨가 포함된 복지 사각지대 발굴 대상 명단을 지자체에 통보했습니다. 복지부의 통보에 따라 전주시는 A 씨에게 지원 대상임을 알리는 우편을 보냈지만 연락이 없었습니다. 8월에는 휴대전화 번호로 연락을 시도했으나 닿지 않았고, 지난달 24일에는 지자체 사회복지 공무원들이 주소지로 찾아갔으나 A 씨의 집을 찾지 못한 채 돌아왔습니다. 전입신고 서류에 상세 주소가 적혀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복지의 사각지대에서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위기가구 사례는 2014년과 2022년에도 있었습니다. 2014년 송파구에서 세 모녀가 숨진 채 발견된 ‘송파구 세 모녀’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생활고로 고생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추정됐죠. 2022년에는 경기도 수원시의 한 다세대 주택에서 세 모녀가 숨진 채로 발견된 ‘수원 세 모녀’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어머니는 암 투병을 하고 있었고, 두 딸은 희소 난치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사회복지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비극으로 연결된 사건들이었죠.

‘송파 세 모녀’ 사건 이후 정부는 복지 사각지대를 없애고자 했습니다. 공과금 중 일부가 3개월 이상 연체되면 공공에 이런 사실이 고지되도록 시스템을 개선했습니다. ‘수원 세 모녀’ 사건의 후속 대책으로는 위기가구의 동 번호와 호수 정보까지 지자체에 제공하도록 했죠. 개정 시행령은 바로 시행됐지만, 관련 정보를 지자체에 통보하는 시스템은 아직까지 구축되지 못해 A 씨의 죽음을 막지 못했습니다. 앞서 일어난 사건들로 사회복지 시스템을 보완했지만 비극은 반복되고 있습니다. 비슷한 사건이 반복되기 전에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숨진 40대 여성이 살았던 빌라 입구 우편함에 공과금 고지서가 보인다. 연합뉴스

■위기가구 찾을 수 있는 법적 근거 만들어야

이번 사건처럼 연락처·주소지 정보가 없거나 내용이 부정확해 위기가구를 발굴하지 못하는 일은 적지 않게 발생합니다. 위기가구 중 도움을 요청하기보다는 고립을 택하는 경우도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최근 우리나라는 가계부채 증가 규모가 가파르게 상승하며 ‘몰락하는 중산층’이 생겨났습니다. 이들은 사회적으로 격리돼 스스로 숨어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쉽게 찾기가 힘듭니다.

서울여대 정재훈(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동·호수를 의무 기입하도록 하는 방안은 효과가 없을 수도 있다”며 “다른 주소를 써서 낼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정 교수는 지원 대상자의 마지막 상황을 파악할 때까지 추적해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만약 대상자가 처해있는 최종 상황이 파악되지 않을 때는 적극적으로 찾아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회복지 공무원이 경찰에 연락을 하거나, 실종자 처리를 해서 경찰이 위치 추적을 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하지만 현재는 법적으로 불가능한 상태입니다. 정 교수는 “최종 상황이 파악되지 않은 위기가구를 찾아낼 인력도 부족하고, 법적 근거도 없다”며 “대상자를 추적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전했습니다.

■‘미등록 아동’ 사각지대도 존재

A 씨와 함께 발견된 아이는 ‘미등록 아동’이었습니다. 출생신고도 이루어지지 않았고, A 씨의 가족관계증명서에도 등록돼 있지 않았죠. 얼마 전 정부의 대대적인 전수조사 대상에서도 빠졌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정부는 지난 6월 2015~2022년생 아동 중 출산 기록은 있지만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2123명을 전수 조사했습니다. 이 조사는 의료기관에서 태어난 신생아에게 출생신고 전 부여되는 7자리 숫자인 ‘임시 신생아 번호’를 추적해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아이는 미등록 아동 전수조사 대상에 포함되지 못했습니다. 수사당국은 ‘병원 밖 출생’일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숭실대 노혜련(사회복지학부) 교수는 “아이가 병원 안에서 태어났는지, 밖에서 태어났는지 철저히 조사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병원 안에서 태어났다면 아이가 왜 전수조사 대상에서 빠졌는지, 이런 일이 더 있는지 꼼꼼하게 조사해야 한다고 말했죠. 병원 밖에서 태어났다면 ‘병원 밖 출생아동’을 발굴하고 도움을 줄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전했습니다. 노 교수는 “모든 임산부가 보편적으로 상담과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노 교수는 “지역 사회 안에서 협력 체계를 마련해 위기가구를 발굴해내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전했습니다. 지역을 잘 아는 사람이 위기가구를 제일 잘 파악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기관 실무자들이 지역 주민과 자주 접촉해 관계를 맺고,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빨리 의뢰해주고 도움을 줄 수 있는 체계가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노 교수는 “위기가구는 복지제도를 찾고 신청할 의지나 정보가 부족할 수도 있다”며 “복지기관들이 지역 사회 안에서 협력 체계를 마련해 찾아가는 복지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