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노]통도사가 옛 육군병원? 보존·조사에 정부 관심 필요

김민주 이동윤 기자 dy1234@kookje.co.kr  |  입력 : 2020-06-21 20:50:27
 
*세 줄 요약
1.6·25전쟁 때 경남 양산 통도사에 육군병원이 자리했다는 사실을 뒷받침할 사료가 또다시 발견해
2.당시 이곳에서 치료를 받은 군인들이 남겼던 것으로 보이는 낙서가
3.경내 법당에서 발견되면서 통도사는 이를 바탕으로 육군병원 소재지로 공인받는 작업에 박차를 가할 계획


*이게 왜?
-영축총림 통도사는 최근 경내 대광명전에서 6·25전쟁에 나섰던 군인들이 남긴 것으로 추정되는 낙서가 발견됐다고 21일 밝혀

-칼 등 날카로운 도구로 새겨넣은 것으로 추정되는 글귀는 물론, 연필로 쓴 것으로 보이는 비교적 선명한 문구도 포착돼

-어른 손바닥 정도 크기인 이 기록들은 ‘단기 4284년’(1951년)을 명기하며

-당시 통도사에 있던 육군병원에 입·퇴원한 내용을 포함, 이곳에서 치료받은 뒤 퇴원하며 남긴 ‘이별사’, 탱크와 트럭 그림 등을 담고 있어


▲ 통도사 내 병원이 병원 분원?
-통도사 내 육군병원은 ‘제31육군정양원’의 분원으로 추정

-본원은 당시 부산 동래에 있었는데, 전쟁 발발로 치료시설이 부족해지면서 양산 통도사에 분원이 설치됐다는 것

-이는 지금까지 통도사 고승과 일대 주민의 구전, 경내 곳곳에 남겨진 기록 등 흔적을 통해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져

-육군병원 분원이 존재했다는 기록물은 지난해 10월 통도사 용화전에서도 발견돼

-당시 발굴된 ‘용화전미륵존불갱조성연기’에는 ‘한국전쟁 후 국군 상이병사 3000여 명이 통도사에 들어와 1952년 4월 12일 퇴거했다’는 내용이 기록돼 있어

-통도사는 ‘1951년 10월 이승만이 제31 육군병원 통도사 분원 장병에게 양말 1600족을 전달했다’는 내용의 동아일보 보도를 확보하기도 해

-하지만 여러 기록 발견에도 아직 정부 차원의 공인은 받지 못해

6·25전쟁 당시 제31 육군정양원 통도사 분원에서 치료받은 군인이 떠나면서 남긴 것으로 보이는 이별사(왼쪽)와 ‘4284년 6월 10일 평양’ 이라고 새긴 글귀


▲ 당시 생활상 짐작케 하는 낙서
-‘정전(停戰)이 웬 말이냐’는 짧은 낙서는 1951년 8월 부산 충무로 등지에서 일었던 ‘정전 반대 시민궐기대회’ 등 사회 동향을 반영

-앞서 그해 6월부터 정전회담이 진행된 사실이 알려지자 대한청년단 등 단체가 궐기대회를 주도해

-‘가노라 통도사야/잘 있거라 전우들아/정든 통도를 떠나랴고 하려마는/세상이 하도 수상하니 갈 수밖에 더 있느냐’는 내용의 글귀에서는

-비극적인 내전에 참전해야 했던 군인의 회환이 잃히기도

-또 ‘단기 4284년 5월 29일 도착해 6월 12일 떠나간다’ ‘4284년 평양’ 등의 짤막한 글귀에서는

-당시 어디에서 온 군인들이 언제 이곳 통도사 분원에서 치료를 받고 떠났는지 짐작할 수 있어

-이 밖에도 그리운 가족, 연인의 이름을 새겨넣은 것으로 보이는 내용 또한 곳곳에서 발견돼

-통도사는 6·25전쟁 발발 70주년을 맞은 시점에서 이번 기록이 제31육군정양원 통도사 분원의 존재를 입증할 소중한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

-문제는 이 사안에 대한 국가적 관심이 부족하다는 점

-통도사 정대 스님(사회과장)은 지난해 연기문 발견 이후 국방부 국가기록원 수도통합병원 등에 보존 요청 공문을 보냈지만 회신조차 받지 못해


△ 통도사 고승과 일대 주민을 대상으로 구술사 정리 작업을 하는 이병길(양산 보광중 교사) 씨
1.구술 내용을 종합하면 분원의 원장은 당시 주지실을 원장실로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2.야간이면 군인 40여 명이 일대 보초를 섰고, 총성이 울려 퍼지기도 했다

3.군인들도 불상 등 경내 시설을 건드리지는 않았다. 다만 난로를 피우던 중 명부전 앞 처마 끝이 그을리는 등 사고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4.(긴 세월에도 군인 낙서 기록이 훼손되지 않고 남아 있었던 데 대해서) 70년 세월 동안 대광명전에 증·개축 등 개·보수 작업을 하지 않아 그대로 보존된 것으로 보인다. 이번 발견은 천운에 가깝다


김민주 이동윤 기자 dy1234@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