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노]부마를 넘어, 시월을 넘어

이노성 기자 nsl@kookje.co.kr  |  입력 : 2021-10-14 21:33:10
부마민주항쟁이 한창이던 1979년 10월 20일. 최창림 경남 마산경찰서장은 기자회견에서 “시위대의 배후에 불순세력이 있다. 총기가 발견됐다”고 주장합니다. 이틀 전인 18일 밤 10시 마산 창동 황금당 골목에서 누군가 실탄을 쐈다는 겁니다. 경찰이 수거한 총기는 길이 15㎝(총신 10㎝). “손잡이가 없이 스프링 고리를 젖혀 실탄을 발사했다”는 설명에 기자들은 실소를 금치 못했다고 합니다. 총기도 조잡하거니와 경찰이 연행한 시위대를 조사할 때 사제 총기에 대해선 거의 묻지 않았기 때문.

사체 총기의 정체를 밝힐 단서가 최근 중앙정보부(국가정보원)의 서류 뭉치에서 발견됐습니다. 502보안부대가 그 해 10월 19일 작성한 문서(민간인 A 씨가 길이 10㎝짜리 총기와 실탄을 습득해 신고했다)가 그것입니다. A 씨가 발견한 총기는 군대에서 사용하던 신호탄. 마산경찰서의 총기와 502보안대의 신호탄이 같은 종류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경찰이 군으로부터 총기 정보를 넘겨받아 ‘시위대가 만들었다’고 조작했을 가능성은 농후합니다. 당시 검·경·중앙정보부 모두 부마항쟁에 불경·분순 딱지를 붙이려 한 흔적이 많기 때문입니다. 부마민주항쟁진상규명위원회도 14일 “사제 총기에 대한 진실 규명에 착수했다. 시위대 색출에 앞장섰던 ‘상담지도관실’의 실체도 파헤치겠다”고 발표. 상담지도관은 ‘16일 부산대 운동장에서 데모할 때 ○○○이 최선두에 가담했다’는 식의 정보를 경찰과 군에 전달했다고 합니다.

16일은 부마항쟁 42주년입니다. 이날 창원 3·15아트센터에서는 ‘부마를 넘어, 시월을 넘어’를 주제로 기념식이 열립니다. 부산·마산이라는 지역성과 1979년 10월이라는 시대성을 넘어 민주화운동의 가치를 확산하자는 의미. 우리나라 4대 민주화운동 가운데 4·19혁명과 부마항쟁에 이어 1987년 6월항쟁이 모두 부산·경남에서 촉발돼 전국으로 확산했습니다. 독자 여러분은 민주화의 성지에 살고 계십니다. 이노성 국제신문 디지털국장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