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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1년 전 성폭행하려던 남성의 혀를 깨물어 중상해 혐의로 기소돼 유죄 판결을 받았던 최말자 씨가 10일 부산지법에서 열린 재심 선고 공판을 마친 뒤 “최말자는 무죄다”를 외치고 있다. 최씨는 61년 만에 열린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연합뉴스 |
①1964년 5월 6일 ‘그날’
1964년 5월 6일 당시 18세였던 최말자 씨의 친구들이 집 대문을 두드리면서 사건이 시작됩니다. 먹을 것이 귀하던 시절, 친구들이 제사를 지내고 남은 떡을 주기 위해 최 씨 집을 찾아온 것이었는데요.
그런데 어떤 남자가 친구들 뒤를 따라옵니다. ‘할 말이 있다’며 불러 세우기도 했죠. 최 씨는 친구들이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길을 가르쳐 달라”는 노모 씨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합니다.
친구들의 집 방향과 반대편으로 길을 안내한 최 씨는 “큰길을 따라가라”고 알려준 뒤 집으로 돌아가려 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노 씨가 최 씨의 발을 걸어 넘어뜨렸고, 배 위에 올라타 입을 맞췄습니다. 최 씨는 노 씨를 밀치고, 도망치고, 다시 발에 걸려 넘어지기를 반복했죠.
세 번째에는 넘어지며 돌에 부딪혔는지 잠깐 정신을 잃었습니다. 깨어나니 노 씨는 온데간데없고, 입안에 무언가 ‘이상한 것’이 있어 뱉어내고 집으로 뛰어갔죠. 최 씨는 입안에 있던 이상한 것이 노 씨의 혀였다는 사실도, 자신이 남자의 혀를 깨물어 1.5㎝가량 절단했다는 사실도 까맣게 몰랐습니다.
이후 최 씨는 ‘파도처럼 덮쳐오는 나쁜 일’에 휩쓸립니다. ‘피해자 최말자’는 사라지고, ‘가해자 최말자’만 남게 됐죠. 노 씨는 최 씨를 상해죄로 고소했고, 검찰은 최 씨를 구속했습니다. 검찰에 넘겨지는 과정에서 노 씨는 ‘강간미수’가 아닌 ‘특수주거침입’으로, 최 씨는 ‘중상해죄’로 송치되며 정당방위 자체가 성립할 수 없게 되죠.
최 씨는 성폭행에 저항한 정당방위라고 주장했으나 당시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 시대 법원은 최 씨가 생면부지 남성이었던 노 씨와 거리에서 20분간 말을 나눴다는 이유만으로 “자기에게 마음이 있는 것이라는 착각을 하고 대담하게도 키스하려는 충동을 (노 씨가) 일으키는 데 어느 정도의 보탬은 됐을 것이라는 도의적 책임도 있는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고 판시합니다.
이 과정에서 경찰은 최 씨에게 “남자 하나 불구 만들었으면 책임을 져야 한다. 결혼하면 된다”고 웃으며 말합니다. 판사는 “처음부터 피고인에게 호감이 있었던 것 아니냐” “결혼해서 함께 살 생각은 없습니까” 등 2차 가해를 했죠.
최 씨는 6개월간 구금 끝에 이듬해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풀려났습니다. 노 씨에게는 강간미수를 제외한 특수주거침입·특수협박 혐의만 적용돼 최 씨보다 가벼운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됩니다.
②56년 만의 미투
어렸던 최 씨는 자신이 당한 일이 대체 무엇이었는지조차 몰랐습니다. 그는 이후 이 일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고, 가슴속 한으로 묻었습니다.
자신이 어떤 일을 당했는지 깨달은 것은 어릴 때 못다 한 공부를 하기 위해 늦게나마 대학에 진학하고 난 뒤였습니다. ‘성, 사랑, 사회’라는 과목의 수업을 들으며 성폭행이라는 용어와 피해자인 자신이 보호받았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 당시 평등하게 재판받지 못했다는 것도 알게 됩니다.
최 씨는 56년 만에 용기를 냅니다. 2020년 5월 정당방위를 인정해 달라며 법원에 재심을 청구한 것인데요. 하지만 부산지방법원과 부산고등법원은 최 씨의 청구를 잇따라 기각합니다. 법원은 ‘검사가 불법 구금하고 자백을 강요했다’는 최 씨의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가 없고, 반세기 전 사회문화적 환경은 오늘날과 다르다며 청구를 기각합니다.
재심 청구는 대법원까지 들어갔는데요. 다행히 대법원은 “최 씨의 주장이 옳다고 볼 정황이 충분해 법원 사실조사가 필요하다”며 사건을 부산고법으로 돌려보냈습니다. 그러면서 61년 만에 재심이 열리게 되죠.
③‘가해자 최말자’에서 ‘피해자 최말자’로
지난 7월 23일 열린 재심 공판에서 검찰은 최 씨에게 무죄를 선고해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습니다. 그러면서 “검찰의 역할은 범죄 피해자를 범죄 사실 그 자체로부터는 물론이고 사회적 편견으로부터도 보호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 이 사건에서 검찰은 그 역할을 다하지 못했고 오히려 반대 방향으로 작동했다. 그 결과 성폭력 피해자로서 마땅히 도움을 받아야 했음에도 가늠할 수 없는 고통과 아픔을 줬다”며 최 씨에게 고개 숙여 사과했습니다.
지난 10일 부산지법은 최 씨의 중상해 등 혐의 사건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합니다. 재판부는 노 씨가 ‘일생 말 못 하는 불구의 몸’이 됐다고 판단할 만한 증거가 없어 중상해라 보기 어렵고, 일반 상해죄 또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 행위로서 정당방위에 해당하므로 범죄 성립 요건이 충족되지 않는다고 봤습니다.
선고 뒤 최 씨는 “61년 전 18세 소녀였던 나는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피해자가 가해자로 변동돼 나의 운명은 죄인이 됐다. 주변에서 바위에 계란 치기라고 만류했지만, 이 사건을 묻고 갈 수가 없었다”며 “역사와 기록도 중요하지만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소회를 밝혔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