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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故)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빈소를 찾은 시민들이 조문하고 있다. 제공=연합뉴스 |
김민기는 스물에 ‘아침이슬’을 부르고 보안사에 끌려갑니다. ‘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타오르고’가 김일성을 미화한 게 아니냐는 추궁을 받았었지요. 그 시절 동네 전봇대 나붙은 ‘간첩 식별요령’은 이렇습니다. ①새벽에 등산복 차림으로 출현하는 자 ②담뱃값을 모르는 자 ③정부에 불평 불만이 많은 자…. 김민기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을 고문한 사람이 불쌍하다고 했습니다. “한참 맞다 보니까 의식이 희미해지면서 패는 놈들 모습이 슬로비디오로 보이는 거야. 근데 걔네들한테 갑자기 미안한 생각이 들더라구. 나 때문에 죄를 짓고 있구나.”
‘아침이슬’과 쌍벽을 이루는 민중가요가 ‘임을 위한 행진곡’입니다. 원작사가는 15일 별세하신 백기완 선생입니다. 1932년 황해도에서 태어난 고인은 농민·빈민·통일·민주화운동의 큰 별입니다. 4·19혁명과 한일협정 반대운동의 중심에는 늘 그가 있었습니다. 투옥과 고문은 일상이었습니다. 1974년 유신 반대 100만 서명운동을 주도하다 투옥된 데 이어 1979년 ‘YMCA 위장결혼 사건’과 1986년 ‘부천 권인숙양 성고문 폭로대회’를 주도한 혐의로도 또 옥고를 치릅니다. 여든이 넘은 고령에도 비정규직·해고 노동자 투쟁 현장에는 늘 고인이 함께 했습니다.
백 선생은 지독한 우리말 사랑꾼입니다. 달동네 새내기 동아리 모꼬지를 처음 만들어 쓴 것이 선생입니다. 그의 수상집 ‘자주고름 입에 물고 옥색치마 휘날리며’는 보안사에서 고문을 받고 수감 중이던 1979년 쓴 문화비평서입니다. 선생은 책 초반부에 시를 쓰고 싶어하는 딸에게 장산곶매의 전설을 들려줍니다. ‘황해도 장산곶 숲속에서 가난한 자들과 평화롭게 살던 장수매가 어느 날 대륙에서 날아와 사람을 해친 독수리에 맞선다. 처절한 싸움 끝에 승리한 장산곶매는 큰 상처를 입는다. 낙락장송에 내려 앉았다가 또아리를 튼 구렁이 또한 물리치고 하늘 높이 날아오른다’. 장산곶매는 자주성·자유정신과 약자를 위해 싸우는 민중의 대변자를 상징합니다. 선생이야말로 장산곶매와 같은 삶을 산 것 아닐까요. ‘장산곶매 이야기’는 황석영의 대하소설 ‘장길산’ 첫 머리에도 등장합니다.
선생은 전쟁 통에는 부산 제5육군병원에서 복무했었지요. 부산민주공원은 16~18일 1층 로비에 백 선생의 추모공간을 마련합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이노성 국제신문 디지털국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