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노]욕망Ⅱ : 산복도로의 투기 바람과 김형률

이노성 기자 nsl@kookje.co.kr  |  입력 : 2020-12-15 21:30:52
동구 수정 아파트. 국제신문 DB


어제(14일)에 이어 오늘 Editor’s pick 주제도 욕망입니다.

 부산 동구 산복도로 중턱을 오르다 보면 수정아파트가 나타납니다. 반세기 전에 준공한 부산 최고령 아파트 중 하나입니다. 한 채 면적은 약 10평(36㎡ ) 내외입니다.

 동구청은 올해 10억 원을 투입해 수정아파트 50채를 사들이려 했습니다. 쪽방촌 철거민들에게 임시숙소로 제공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예기치 못한 문제가 생겼습니다. 평균 3000만 원 하던 한 채 값이 8000만 원대로 폭등한 겁니다. 비상이 걸린 동구청이 지난 10월부터 두 달간 수정아파트 매매내역 151건을 분석했더니 매수자의 92%가 다른 동네 사람이었습니다. 매매가가 9000만 원 이상도 6건이나 됐다고 합니다. 쪽방촌 도시재생이라는 ‘호재’를 노리고 투기세력이 움직인 건 아닌지 의심되는 대목입니다. 수정아파트 소유주도 대부분 외지인입니다.

 결국 동구청은 예산이 부족해 수정아파트 매입을 중단했습니다. 철거민 이주 계획에도 차질이 생겼습니다. 세입자가 눈물을 머금고 아파트를 비싸게 사는 피해도 우려된다고 합니다. 누군가의 욕망이 사회적 약자를 어떻게 괴롭히는 지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수정아파트 3동 206호는 고(故) 김형률(1970~2005년)이 살던 집입니다. 김 씨는 일본 원자폭탄 피해자인 어머니를 둔 인권운동가였습니다. 그 자신도 선천성 면역글로불린결핍증으로 투병하다 2005년 5월 29일 숨을 거뒀습니다. 김 씨의 끈질긴 요구에 우리 정부는 2004년 국내에 생존한 피해자 1·2세의 건강실태를 조사합니다.

 기자는 20여 년 전 수정아파트 근처에서 김 씨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는 작은 거인이었습니다. 40㎏도 안 되는 작은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단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욕망(전쟁과 핵폭탄)이 낳은 비극”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더군요. 평생 가난에 시달리다 불꽃 같은 삶을 마감한 김형률. 그가 살아 있었다면 천정부지로 치솟는 집값을 감당 못해 보금자리에서 쫓겨났거나 ‘반투기’ 운동가가 됐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노성 국제신문 디지털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