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노] BTS, 그래미를 역습하다

김희국 기자 kukie@kookje.co.kr  |  입력 : 2026-08-04 09:06:48
1일(현지시간) 미국 뉴저지주 메트라이프 스타디움에서 열린 BTS 아리랑 월드투어 콘서트 모습. 연합뉴스
지난 6월 17일 묘한(?)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미국 대중음악 시상식인 ‘그래미 어워즈’가 내년에 ‘베스트 아시안 팝 뮤직 퍼포먼스’ 등 5개 부문을 신설한다는 뉴스였습니다. 그래미 측은 아시안 팝이 글로벌 음악 업계에 미치는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는 점을 인정해 신설하게 됐다고 설명했습니다.

소식을 듣자마자 처음 들었던 생각은 무엇인가 이상하다는 점이었습니다. 곧바로 떠오른 이름은 방탄소년단(BTS)이었습니다. 왜 BTS를 먼저 떠올렸는지 설명드리겠습니다.

그래미는 전 세계 대중음악 아티스트들이 가장 동경하는 상입니다. 빌보드 뮤직 어워즈,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와 함께 미국 3대 대중음악상으로 불리지만 무게감은 다릅니다. 당연히 BTS도 그래미를 원합니다. 빌보드와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에선 평정했다고 표현해도 무리가 안 될 정도로 많은 상을 받았습니다.

남은 게 그래미였죠. 실제 BTS는 2021년부터 3년 연속 ‘베스트 팝 듀오 그룹 퍼포먼스’ 등에 후보로 올랐지만 수상은 하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2021년 기자회견에선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는 없다”며 그래미 수상에 의욕을 드러냈습니다.

BTS는 멤버들이 군복무를 마치고 지난 3월 발표한 정규 5집 ‘아리랑’(ARIRANG)으로 미국 빌보드 메인 싱글·앨범 차트 1위를 모두 석권하는 등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염원했던 그래미를 품에 안을 가능성이 훨씬 높아졌습니다.

그런데 그래미 측에서 갑자기 ‘베스트 아시안 팝 뮤직 퍼포먼스’ 부문을 신설해 버렸습니다. 누군가는 BTS의 수상을 기정사실화하며 드디어 그래미와 인연을 맺는다고 기대감을 높였습니다.

바로 이 지점입니다. BTS가 그래미를 받지만, 본상(제너럴 필즈·General Fields)을 비롯한 주요 팝 부문이 아닌 아시아 음악에 국한된 상을 받게 돼 크게 가치를 인정받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찜찜했습니다. 그래미는 그동안 상과 관련된 논란이 적지 않았습니다. 특히 비(非) 백인 아티스트에게 유독 보수적이고 배타적이라는 비판도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래미는 아티스트가 출품하면 주최 기관인 레코딩 아카데미 회원의 1차 투표와 최종 투표로 수상자를 가리는데, 회원 대부분이 미국 주류 음악계의 전통적 집단으로 구성되는 폐쇄성 탓에 ‘새로운 선택’에 인색하다는 지적입니다. 심지어 팝스타 마이클 잭슨도 그래미 논란을 피하지 못했습니다.

반전이 일어났습니다. BTS가 내년 2월 열리는 제69회 그래미 어워즈에 음악을 출품하지 않는다고 지난달 29일 전격 발표했습니다. 그러면서 “음악이 지역이나 언어로 구분되기보다 음악 그 자체로 들리고 사랑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직격탄을 날렸습니다. 맥락을 알고 나면 BTS의 말이 그래미를 향한 비판이란 걸 단번에 눈치챌 수 있습니다.

놀랍고 시원하지 않습니까. 한편으로는 대단합니다. 그토록 염원했던 상을 보이콧했는데, 오히려 그 상을 뛰어넘은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요?

BTS의 역습에 당황한 것은 그래미입니다. BTS의 발표 하루 뒤 그래미 어워즈를 주최하는 레코딩 아카데미의 하비 메이슨 주니어 최고경영자(CEO)는 “BTS가 그래미 어워즈에 참여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을 듣고 슬펐지만, 음악 창작가로서 그들의 결정을 이해하고 존중한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그러면서도 한 가지 해명을 하고 싶다며 “아시안팝 부문은 아시아에서 나오고 있는 팝 예술의 깊이와 다양성, 탁월성을 기리기 위해 신설됐다. 이 부문은 중요한 아티스트들을 특별히 조명하기 위한 것이다. (…) 결코 구분 지으려는 것이 아니고, 1만5000명 그래미 투표인단의 인정을 받는 대상을 넓히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어떻습니까. 변명처럼 들리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BTS는 어떻게 그래미를 보이콧할 용기가 생겼을까요. 그들에겐 최고 우군인 ‘아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1일 미국 뉴욕 인근 뉴저지 메트라이프 스타디움에서 열린 공연에 7만8000명이 열광했다고 합니다. 공연장이 낯익죠? 2026 북중미 월드컵 결승전이 열린 곳입니다. BTS는 하프타임 쇼를 장식하기도 했습니다.

공연에서 팬들은 그래미를 보이콧한 BTS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이 정도면 보이콧해도 되지 않겠습니까. BTS는 더 많은 것을 얻었습니다.